복합공간 ‘아라리오 제주’ 탄생!

    곽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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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1.04조회수 9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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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멈춘 것처럼 바랜 색을 품고 있는 제주도 구제주 탑동 한복판에 강렬한 빨간 빛깔의 현대적 건물 3동이 들어섰다. 바깥은 풍경과 상당히 대조적인 분위기지만,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면 계단을 떼어 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거친 시멘트 벽, 허물다 만 콘크리트 기둥, 철골 구조물이 만든 차갑고 생경한 공간이 펼쳐진다.

    냄새마저 오래된 것 같은 이상한 곳. 이곳에 전시된 세계적인 예술 작품들은 그 어떤 폼 나는 갤러리에서 본 것보다 살아 있는 느낌을 준다. 화이트 큐브를 부순 갤러리계의 이단아 ‘아라리오뮤지엄 제주’의 일관된 이미지다. 아라리오(회장 김창일)가 10년의 기다림을 끝내고 드디어 완성한 제주 내 3개의 뮤지엄이 구제주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보존과 창조’라는 아라리오뮤지엄의 콘셉트를 그대로 살린 탑동시네마, 탑동바이크숍, 동문모텔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뮤지엄이라는 본연의 목적 외에도 동네 이름과 기존 용도를 이름에 남겨 둠으로써 제주도민과 함께해 온 시간을 오롯이 간직한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보존과 창조’, 생명과 영혼이 있는 공간으로

    갤러리로 환생한 탑동시네마는 2005년 폐관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운영되다 재정악화로 문을 닫았다. 이 건물을 눈여겨보던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은 4년 전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이 건물을 19억원에 사들였다. 헐값에 샀다고들 하지만 한 층을 증축해 카페로 개조하고 건물 내·외부를 리뉴얼하는 데만 50억원 이상이 들었다.

    오토바이 가게였던 건물은 아라리오뮤지엄 탑동바이크숍, 동문시장 근처에 매입한 모텔은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로 이름 지었다. 내부는 휑하기 짝이 없고,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분위기지만 조금씩 둘러보다 보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너진 콘크리트와 현대 예술작품이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기존 건물을 최대한 보존해 높이 8m가 넘는 거대한 전시실부터 화장실이나 모텔방의 욕실과 같은 조그만 자투리 공간까지 그대로 살려 전시실로 활용한 아이디어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낡은 기존 건물의 잔재들은 모던한 감각의 갤러리나 카페보다 현대적이고 참신한 감성을 전달해 주며, 작품들에 생기를 부여한다.



    폐관한 영화관 19억에 매입, 갤러리로 재탄생

    아라리오뮤지엄은 제주도에 첫 번째 갤러리를 짓겠다던 세계적인 미술품 수집가 김창일 회장의 오랜 꿈이 이뤄진 곳이다. 동시에 제주도의 낙후된 지역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상업지구로 활용하는 한 방편을 보여 준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큰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참신한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최근 색다른 MD 혹은 새로운 유통 형태를 찾는 패션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부분이지 않을까.

    게다가 아라리오뮤지엄의 내부 인테리어와 작품전시 기획에는 확연한 차별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비밀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기획자가 패션 VMD 출신 인물이라는 점. 오브제, 아이올리, 원더플레이스 등 패션기업에서 홍보와 마케팅, VMD를 전담했던 김은아씨가 아라리오뮤지엄 크리에이티브디자인센터의 센터장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김은아CD가 아라리오뮤지엄 프로젝트에 조인하게 된 데는 김창일 회장의 고집이 한몫했다. 색다른 공간을 꾸미고 싶은 그에게 기존 미술관이나 갤러리 출신 기획자들은 성에 차지 않았던 것. “하나같이 뻔한 기획만 내놨다. 공간을 살리지 못하는 기존 미술관들과 다를 바 없는 생명력 없는 전시라고 느껴졌다”라는 김 회장은 지인의 추천으로 김은아 CD를 만났다. 충격 그 자체였다.

    VMD 출신 김은아 CD 활약, 패션 & 예술의 만남

    “패션감각과 공간에 대한 이해력을 모두 갖춘 사람이 미술품 전시를 기획하니 동선부터 미술품이 걸린 공간의 감성까지 달라졌다. 내가 원하던 자연스러움, 생명과 영혼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공간이 탄생했다. 아주 만족도가 높았다.” 김 회장은 패션과 예술의 만남을 논하며 아라리오뮤지엄의 색다른 매력의 비밀을 밝혔다.

    패션과 예술의 만남은 공간과 전시 기획에만 그치지 않았다. 뮤지엄의 가장 중요한 상업 공간인 기프트숍을 놓칠 수 없다. 아라리오뮤지엄의 기프트숍은 ‘뮤지엄숍’으로 부르는 편집매장이다. 아라리오는 이 공간을 위해 크리에이티브디자인센터 내에 디자인팀을 따로 뒀을 정도. 작품을 활용한 일반 기념품을 판매하는 기프트숍과 달리 이곳은 직접 기획한 뮤지엄 PB 상품과 셀렉트 아이템을 적절히 조합한 편집매장으로 운영한다.

    현재 개관 기념으로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작품과 김창일 회장의 드로잉 등을 활용한 티셔츠, 가방, 지갑, 노트 등을 PB 상품으로 선보인다. 밋밋한 프린팅 상품이 아니라 디자인이 더해진 패션 아이템으로도 희소 가치가 높은 상품이다. 가격도 착해 뮤지엄을 찾는 고객들에게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일반 오프라인 편집숍에서는 선보인 적 없는 온라인 디자인 실력자들의 문구류, 액세서리, 잡화 등을 입점시켜 풍성하게 구성했다.

    아트 콜래보 편집숍으로 진화한 뮤지엄숍

    이곳은 후에 카페와 뮤지엄 편집숍을 조합한 ‘심플 위드 소울(Simple with Soul)’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시켜 운영할 방침이다. 작년 신세계백화점 천안점에서 8개월 동안 팝업 스토어를 열었을 때 산뜻한 상품구성, 뮤지엄숍이나 편집숍에서 볼 수 없던 아티스트들의 콜래보 패션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에서 확신을 얻었다.

    아직 패션 부문의 비중이 매우 적지만, 뮤지엄의 특성을 살려 김 회장의 개인 작품은 물론 전시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활용한 협업 상품의 비중을 늘리면서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의 경우 평일 관람객이 200~300명 수준인데, 5층에 위치한 편집숍을 찾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고 있어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심플 위드 소울’이란 이름에는 간결함 속에 영혼을 담아야 한다는 김 회장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작은 공간으로 시작했지만, 패션과 아트의 만남이라는 아라리오뮤지엄의 콘셉트에 가장 적절하게 들어맞는 상업적 공간으로 성장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는 김 회장이 줄곧 강조하는 ‘예술이 곧 인생이고 삶이 곧 예술이다(Art is life, Life is art)’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13개 건물 추가 매입,
    예술로 ‘의식주’ 관통한다~


    김창일 회장, 아라리오의 이러한 생각은 제주에 아라리오뮤지엄을 개관한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김 회장은 미술관 근처의 건물을 13개나 추가로 매입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9900원짜리 돈가스집, 10명이 정원인 바, 3층 규모의 패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1층은 빵가게, 2층은 아이스크림 가게, 3층은 카페인 디저트숍, 에어팩토리베이커리와 카페 등 주로 F&B 콘텐츠를 선보인다.

    의식주, 입고 먹고 지내는 모든 것에 예술이 깃들 수 있고 남들과 다른 색다른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다는 김 회장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남들의 시선에 상관하지 않고 제대로 한다는 ‘마이웨이’ 마인드와 탑동이 있는 구제주의 시든 분위기를 생기 있게 바꾸겠다는 순수한 야심이다.

    지난 10월1일 개관한 아라리오뮤지엄 3개동은 각기 테마에 따른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탑동시네마 개관전으로 ‘운명에 의해(By Destiny)’라는 제목으로 김 회장이 운명같이 만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총 10개국 아티스트 21명의 작품 72점을 선보인다. 탑동바이크숍은 김구림 작가 개인전을, 동문모텔은 실제 동문모텔 방의 일부를 재료로 삼은 전시작품과 함께 16개국 작가들이 만든 쇼킹한 63개 전시물을 내걸었다. 대부분 김 회장의 컬렉션 위주로 운영하며 탑동바이크숍만 작가를 선택해 기획전을 열 계획이다.

    **패션비즈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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