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 안에 갇힌 한국패션 희망은

    es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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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7.01조회수 2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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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글로벌, 밀레니얼 소비자 ‘노답’?



    “옷이요? 「유니클로」면 충분해요.”(20대 소비자), “인스타그램에서 옷 사요. 인플루언서들이 제안해 주는 옷이 백화점 브랜드 옷보다 훨씬 예뻐요.”(30대), “요즘은 무조건 여행이죠. 홈쇼핑에 저렴한 해외여행 상품이 즐비하니까 골라가면 돼요. 쇼핑은 시즌오프 슈퍼 세일 때 홍콩 여행 가서 한꺼번에 해요.”(40대 직장여성)

    “외국 나가서 쓰는 게 버는 거죠. 그 돈 가지고 제주도 가 봐야 먹는 거 노는 거 등등 더 비싸니까. 그럴 바에야 동남아 여행이 더 낫다는 거예요.” “요즘은 아이들 옷도 전부 카카오스토리를 통해서 사요. 파워블로거, 인스타그래머들이 알아서 코디해 주는 데다, 그들이 실제 아이 엄마다 보니 실생활에 꼭 필요한 용품까지 풀 서비스해 주니까 너무 좋아요.”(30대 주부)

    “옷보다 집 인테리어에 훨씬 관심이 많아요. 요즘 집 꾸미고 요리하는 데 재미를 붙여서 돈은 다 홈 인테리어와 요리 도구 사기, 새로운 레시피에 도전하는 데 쓰는 것 같아요. 웬만한 레시피 정보는 유튜브를 통해서 얻고, 주로 상품은 인터넷(모바일)으로 구입해요.”(50대), “편한 신발 「락포트」를 사고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너무 비싸길래 아들 시켜서 직구로 샀어요. 좀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요.”(60대)

    쇼핑은 인스타그램과 카스, 친구와는 맛집
    한국패션, 과연 ‘노답(답이 없음)’ 일까? 이상한 형국이다. 소비는 줄지 않았는데 국내 패션 기업, 유통 기업은 모든 항목이 빨간불이다. 매출 역신장, 판매율 급감, 수익성 악화. 절대로 역신장은 하지 않는다는 국내 백화점들도 상반기 마이너스 신장으로 비상등이 켜졌다. 대체 소비자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런 가운데 최근 비상한 관심을 끄는 뉴스 두 가지. 올해 벤츠와 BMW 국내 판매량이 일본을 넘어섰고 절대 여행객 수가 일본을 넘어섰다는 것. 인구가 일본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한국의 벤츠 BMW 자동차 판매와 해외여행객 수가 일본을 넘어섰다는 것은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일본은 20년 동안의 불황기를 지나 실질적인 소비로 가면서 경기가 살아나고있는데, 이제 장기불황을 시작하는 우리는 이상한 소비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홈쇼핑 10개월 할부 여행의 비중이 꽤 높다고 한다. 있는 사람이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일반인들이 소비를 앞당겨 하고 있다는 의미다. 가계소비가 늘어나는 데 비해 가계순부채도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도 뭔가 비정상이다.

    60대 소비자, 아들 시켜 직구로 「락포트」 산다
    지금 우리 경기 상황을 보면 돈이 그렇게(외국 자동차, 해외여행 등으로) 내수 시장 활성화와는 거리가 먼 곳으로 흘러간다. 소비자들이 돈은 쓰는데 내수경기와 아무 연결고리가 없는 곳에서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실제 패션의 소비가 일어나는 곳도 우리가 늘상 보아 온 ‘마켓 플레이스’가 아니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사거나, 오프라인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SPA로 해결하고 옷에는 큰 투자를 하지 않는 대신 여행으로 욕구불만을 달랜다(표2 참조). 지표가 잘 잡히지 않는 그곳, 우리가 성장하고 몸담고 있는 산업의 중심이 아니라 4P 국면의 바깥에서 소비자들이 놀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1 참조). 결국 국내 경기와 무관한 쪽으로 모든 소비가 흘러가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지금 애정하는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속에서 소비자들을 움직이는 리더들은 그동안 산업을 이끌어 온 전문가들이 아니다. 흔히 요즘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이들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팬덤을 만들어 가면서 파워를 키웠고 이곳을 기반으로 스토리와 커머스를 함께 하는 식이다.

    벤츠 BMW 판매, 해외여행객, 日 넘어선 기현상
    전문성과 탄탄한 경험이 아니라 감각을 가지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해 주는 이들은 24시간 소비자들과 ‘밀착’돼 있다. 바로 모바일이다. 신상을 푸시하고 맛있는 곳, 재미난 곳을 아름다운 비주얼로 제안해 주며 종일 친구처럼 옆에서 수다를 떨어 준다. 이들이 제안해 주는 상품을 재미로 사 보기 시작한 소비자들은 어느덧 열렬한 팬이 된다.

    기존의 전문가이자 리더들이 보기에 이들은 개미군단이며 무명의 비전문가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저 블로거인 줄 알았던 이들이 점점 자신의 팬덤을 중심으로 소비자를 빨아들이며 자신만의 부족을 형성하더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 부족의 숫자의 합산은 이제 메이저들의 영역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이런 수많은 인플루언서(인스타그래머, 유튜버, 파워블로거 등)로 인해 「에르메스」 백의 매출이 급성장 중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는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제안하는 손안의 네모난 라이프스타일 속 한 귀퉁이에 반드시, 하지만 무심한 듯 자리잡고있는 소품, 바로 「에르메스」 핸드백이다. 옷은 동대문 상품이거나 저렴한 것일지라도 이 옷의 절대 가치가 없지 않다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도구가 바로 「에르메스」인 것이다.

    국내 패션 소비자, 인플루언서가 빨아들인다?
    이런 모든 상황은 지금 소비자와 산업계가 따로 논다는 엄중한 현실을 의미한다. 대체로 소비자들이 움직이는 행동반경을 보면 소비자는 이미 충분히 글로벌이다. 매일같이 할리우드 스타들의 인스타그램을 뒤지고 틈만 나면 해외여행을 간다. 직구의 경험도 이들에겐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들의 시선은 이미 완벽한 글로벌이다. 게다가 지난 수년간 패스트패션의 속도와 경험으로 인해 아주 잘 훈련된 ‘스타일리스트’들이며 가성비를 따지는데도 전문가 수준이다.

    하지만 그동안 내수 시장을 주도해 온 리딩 기업들은 글로벌과는 거리가 멀다. 성장기를 달려오며 내수 시장에 몰입돼 전혀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나마 우리의 희망이던 중국시장도 지금 덫에 걸려 개점휴업이다. 하지만 이는 ‘사드’ 탓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급변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몸이 닳아 하루 걸러 동대문시장을 찾던 중국 빅 바이어들은 “더 이상 한국 패션이 새롭지 않다. 이제 샘플링하러 전 세계를 뒤지다 보니 한국에 뭔가 좀 더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데 그게 없다. 여전히 감성과 스피드는 동대문이 세계 최고지만 현재 상태만으로는 2% 부족하다”며 아쉬워한다. 글로벌을 염두에 두지않고 중국 비즈니스를 전개해 온 결과는 이렇게 비참하다. 글로벌에서 통하지 않는 얄팍한 중국 비즈니스, 그 달콤함은 너무 짧았다.

    소비는 느는데 내수 산업 활성화와 따로 논다?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화두가 이렇게 뜨거운데 사실 국내 리빙 산업은 공백이다. 몇몇 큰 기업을 제외하고 소비자들의 라이프를 대변하는 것은 자잘한 영세 기업들뿐. 이 시장이 열리는 동안 왜 패션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로 시선을 확장하지 못하고 ‘옷장사’에만 머물러 있었을까. 백화점 탓을 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산업이 전혀 다르다고 얘기하기엔 우리가 그동안 보아 온 일본 시장에서 얻는 단서가 너무 많다.

    요즘 한국과 서울, K디자이너, 한국 패션 브랜드에 대한 외국의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유례없이 높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유럽, 미국… 수많은 외국 바이어들이 한국에 와 새로운 상품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이들의 귀착점은 동대문 혹은 영 디자이너다. 이들이 하는 한결같은 얘기는 백화점 브랜드들은 너무 가격이 비싸고 유니크하지 않다는 것.

    영 디자이너 상품은 매력적인데 역시 비싼 것이 많고 너무 외국과의 비즈니스 준비가 안 돼 있다, 동대문 역시 스피드와 가격 면에서 메리트가 있지만 너무 변화가 없다한다. 분명히 기회는 많은데 모두 준비가 안 돼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중국 바이어들은 자국 소비자들의 수준이 현저하게 올라가는 데 따라 소싱 범주를 전 세계로 넓히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뜨는데 우리는 ‘옷장사’ 머물러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없을까? 희망은 없는 것인가? 아이디조이(대표 이은경)가 전개하는 「레코브」가 지난봄 내놓은 일명 ‘빤짝이 드레스’는 트렌드와 상관없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겨울의 끝자락, 아직 날씨는 춥지만 봄 기운이 완연하던, 소비자들이 아직 추워서 두꺼운 외투를 벗지 못하던 그때, 화려한 이 원피스와 스커트는 외투 밑으로 봄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늦여름 이들만의 노하우인 ‘인디언 서머(컬러는 가을, 소재는 여름)’ 제품도 모두가 힘들어하는 간절기에 매출을 지켜 주는 숨은 비법이다. 「레코브」는 올해 5월부터 수영복을 출시 이미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마치 외의류처럼 컬러풀한 배색의 수영복 위에 완전히 비쳐 보이는 멋스러운 시스루 원피스를 코디해 여행지에서 화려한 모습을 뽐낼 수 있는 리조트웨어는 이미 휴가를 그리고 있는 소비자들의 마음에 적중됐다. 착한 가격은 「레코브」의 KS마크다.

    또 하나의 사례. 최근 현대홈쇼핑에서 히트한 「데님오브벌츄(Denim of virtue, 이하 벌츄)」의 사례다. 미국 프리미엄 데님 브랜드의 국내 진출법인인 데님오브벌츄코리아의 「데님오브벌츄」는 최고의 터키 원단인 이스코코리아(대표 알렉스장)와 조인했다. 이스코의 전문성과 만난 「벌츄」는 목표 대비 140%로 대박을 터뜨렸다.

    답은 현장! 소비자 마음 읽고 진정성 있으면 대박
    준비된 물량의 88%를 판매했고 여름 상품까지 완판했다. 반품률도 28%에 불과해(통상 홈쇼핑 반품율 50%) 거의 기록적이라는 평가다. 이 방송에서는 이스코라는 글로벌 데님 회사의 콘텐츠를 상품과 엮어 풍부하게 전하며 이를 충분히 설명했고 소비자는 이에 부응한 것이다. 홈쇼핑에서도 진실이 통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신진 디자이너들의 활약도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이들은 동대문과도, 메이저 브랜드들과도 차별화된 유니크한 상품을 아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물론 자신의 SNS를 통해 소비자들과 끊임없이 직접 소통하며 상품을 진화시켜 나간다.

    문제는 ‘메이저’들이다. 결론은 그동안 해온 옛날 방식으로는 ‘노답’며 현장에, 소비자의 마음에 답이 있다는 것. 디자인실에서 시작해 판매로 가던 방향을 완전히 거꾸로 돌려 소비자와 현장이 원하는 것을 기획하고 생산해야 한다. 그 안에는 글로벌 + 가성비 +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라는 축 안에 진정성까지가 담겨 있어야만 한다. 현실은 차갑지만 우리 모두가 이미 그 방향을 알고 있다. 다만 관성을 탈피해 몸을 트는 결단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지금 결단하지 못하면 메이저가 마이너가 될 시간이 곧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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