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Report
「아디다스」 「나이키」 「유니클로」 넘어 토종 브랜드, 1조클럽 가능할까?
Saturday, April 1, 2017 | 김숙경 발행인, mizkim@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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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클럽 : 실제 1조원 매출뿐만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와 맞짱 뜨기가 가능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숫자로 차용
“5000만명 넘는 인구가 있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가까운 한국 패션 시장이 작다고요?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나라인데도요?(한국 46%, OECD 평균 36%) 더군다나 패션쇼 무대 위에서 막 내려온 것처럼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나라에서요?” 해외 패션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패션 마켓이 ‘어메이징(amazing)하다’고 말한다.
10년 전만 해도 이들에게 한국은 변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다. 선진국보다 패션 수준이 현저하게 뒤떨어진, 별 볼 일 없는 존재감에 그쳤다. 그러나 지금은 180도 인식이 바뀌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역동적이며 열정적인 패션 국가로 한국을 첫손에 꼽는다. 해외 패션 관계자들이 꼭 가 보고 싶은 출장지로 한국을 1순위에 둘 정도로 핫 스폿으로 떠올랐다.
“한국은 패션 산업이 성장하기 위한 토양을 아주 잘 갖춘 곳입니다. 다만 내부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보니 재고를 양산하고, 특정 매입 형태의 백화점 중심 유통 구조에 의해 패션 산업이 기형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 문제라면 문제죠. 객관적으로 봤을 때 한국은 너무나 매력적인 마켓이에요. 한국 소비자에게 인정받으면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어요. 한국 패션 기업들에겐 그만큼 기회가 활짝 열린 거죠.”
5100만명 인구에 1인당 GNP 3만 달러 육박
이들은 한국 패션 마켓이 너무 작아 한국 패션 기업들이 힘들어한다는 말에 오히려 반문하며 아낌없이 부러움을 표한다. 이구동성으로 이들은 한국 소비자에게 주목한다. “해가 다르게 우리 소비자들의 패션에 대한 수용도와 상품을 보는 안목이 크게 높아졌어요. 변화된 소비자 니즈를 제대로만 공략하면 연매출 1조원 규모의 브랜드 5개는 거뜬히 탄생할 수 있다고 봐요.” 국내외 패션 마켓을 폭넓게 관찰해 온 이봉진 자라리테일코리아 사장 역시 거침없이 이렇게 진단한다.
과연 한국 패션 시장에서 토종 브랜드(글로벌 상품권 매입 브랜드 포함)로 연매출 1조원(VAT 제외)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을까? 의류, 신발 포함 연간 4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한국 패션 시장에서 1조원을 돌파한 브랜드는 현재 세 개다. 2012년 홀세일 매출 기준 6000억원을 달성한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나이키」와 2015년 8월 말 기준 1조원을 돌파한 SPA 「유니클로」다.
지난해에는 「나이키」 「아디다스」가 홀세일 매출 9000억원을 넘어서 리테일가로 환산하면 무려 1조5000억원(평균 점주 마진율 40% 기준) 규모로 추정된다. 「유니클로」는 지난해 8월 말 결산 기준 매출이 1조1800억원을 기록했다. 세 브랜드 모두 글로벌 마켓에서 활발하게 브랜딩 및 마케팅 활동을 펼치면서 한국 시장에서도 폭넓은 소비자층을 확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이키」 「아디다스」 「유니클로」 1조원 돌파
글로벌 브랜드들이 해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소비자들은 누구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토종 브랜드로 누가 1조원 테이프를 가장 먼저 끊을까? 일단 어느 정도 시장 지배력이 있어야 하는 만큼 폭넓은 고객층을 확보한 아웃도어와 스포츠 브랜드가 일순위로 꼽힌다.
현재 「블랙야크」가 6000억원 규모로 가장 앞서 달려 나가는 가운데 「K2」와 「코오롱스포츠」가 4000억원 규모를 보이고 있다. 골프웨어 시장의 ‘가성비’ 포문을 연 「루이까스텔」을 비롯 「휠라」는 스포츠, 패션, 이너웨어 등 영역에서 3000억원대 매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밀레」와 「네파」는 2000억~3000억원 규모에 포진해 있다.
트래디셔널 테이스트의 패밀리 브랜드 역시 1조원 실현 가능성이 크다. 「빈폴」은 남성복, 여성복, 아웃도어, 골프웨어, 액세서리 등 5개 영역에서 6000억원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헤지스」는 남성복, 여성복, 골프웨어, 액세서리, 아동복(파스텔세상 전개) 등 5개 영역에서 4000억원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고객층 폭넓은 아웃도어 · 스포츠 가능성 커
또한 「브루노바피」 「인디안」 「앤섬」 등을 필두로 편집 SPA를 지향하는 ‘웰메이드’와 패션 잡화 「MCM」 역시 4000억원대 매출에 포진해 있다. 특히 「MCM」은 글로벌 매출까지 포함할 경우 연매출 6000억원대이며, 해외사업도 활발해 1조원 매출 실현에 성큼 가깝게 다가서 있다.
2000억~3000억원대에는 「파크랜드」 「스파오」와 같은 볼륨 존 브랜드 뿐만 아니라 국내 패션의 자존심으로 일컬어지는 「타임」도 여성복과 남성복 매출 포함 이 대열에 속한다.
가장 많은 브랜드가 포진해 있는 1000억~2000억원 사이에 토종 SPA인 「탑텐」 「에잇세컨즈」를 비롯, 여성복 「톰보이」 「시스템」 「구호」, 남성복 「지오지아」 「앤드지」 「지이크」, 캐주얼 「폴햄」 「TBJ」 「베이직하우스」, 패션 잡화 「루이까또즈」 「메트로시티」, 아동복 「블루독」 등 다수의 브랜드가 포진해 있다.
「헤지스」 등 패밀리 브랜드도 1조 매출 도전
이토록 많은 후보 브랜드가 있지만 극소수 브랜드만이 전대미문의 ‘1조원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단일 브랜드로 연매출 1조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조건을 갖춰야 할까? 관심사에 따라 여러 해법이 거론되지만 패션 전문가들은 ‘파괴적 혁신을 통해 급변하는 소비자 니즈에 적극 대응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꼽는다. 또한 ‘조직과 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것’ 역시 중요 척도로 내세운다.
파괴적 혁신이란 지금까지 가져온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과거에는 리오더를 많이 하는 것이 브랜드의 성공 방정식이었다면 지금은 정반대다. 1인10색을 지향하는 소비자 흐름, 일명 ‘안티패션(Anti-Fashion)*’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미국 타임스가 뽑은 디자인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된 프랑스 리 에델쿠르트(Li Edelkoort) 트렌드유니언 대표는 2년 전 ‘안티패션’을 화두로 던졌다. 그녀는 네덜란드 정부 대표 디자인상, 네덜란드 대표 예술가 선정, 프랑스 문화성 예술인 훈장 수여, 일본 이세이미야케 전시회 외국인 최초 총 디렉팅, 영국 최고 명예 산업 디자이너 선정 등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트렌드 예측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안티패션’ 시대, 파괴적 혁신 통해 ‘다름’ 제안을
그녀는 “패션 시장은 고루한 방식에 대한 고집, 답습으로 인테리어, 전자, F&B 등에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진단했다. 덧붙여 “더 이상 관객들은 런웨이에서 본 상품을 6개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비슷한 모델이 비슷한 옷을 입은 모습에도 흥분하지 않는다. 지금 보고(See now) 지금 사는(Buy now) 소비자들의 흐름에 패션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실제 상품기획에 몸담고 있는 제도권의 많은 패션 관계자들은 이를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자라」 「H&M」 등 패스트패션을 지향하는 글로벌 SPA가 패션 시장을 장악함에 따라 그들처럼 2주 만에 신상품으로 교체하지는 못해도 스폿으로 민첩하게 대응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안티패션과 패스트패션을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흐름은 패션의 가장 본질적 요소인 디자인과 생산의 제조 경쟁력을 다시 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됐다. 화려한 치장이나 겉멋보다는 패션의 밑바탕이 되는 제조 경쟁력이 다시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자체 생산기지를 구축하든 아니면 부문별 협력사와 돈독한 파트너십 관계를 맺든 제조의 힘이 패션 사업에서 핵심 키로 재조명을 받고 있다.
과거 성공 방정식 모두 버려라! 리오더↓ 스폿↑
“과거에는 반응이 좋던 디자인을 약간 변형해서 이듬해 내놓으면 아주 잘 팔렸어요. 그런데 점점 호응도가 떨어지더니 이제는 전혀 통하지 않아요. 이제 소비자들은 디자인에서 새로움(something new) 정도가 아닌 완전히 다름(something different)을 원하고 있으니까요.” 패션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는 김연수 아이오 대표 역시 패션 시장의 새로운 흐름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울렛 유통이 크게 확산한 것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빅3의 과열 경쟁에 의해 아울렛이 도심권에까지 속속 진출함에 따라 전년도 인기 상품은 아울렛에서 할인된 가격에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는 유통채널이 생긴 것이다. 결국 정상 매장에서는 전년도와 비슷한 상품이 아닌 완전히 다른 매력적인 상품을 만들어야 정상가로 팔리는 상황을 우리 스스로 초래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완전히 다른 디자인을 매 시즌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상품기획자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에 대해 리 에델쿠르트는 국내 아웃도어 시장을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해법을 제시했다.
“고정관념 버려야 창조적 디자인 나온다”
“제 눈에는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의 로고를 없애면 모두 똑같은 상품으로 보여요. 디자인에 대한 모험이 너무 부족해요. 아웃도어라고 해서 산에서만 소재를 얻으려 하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에스키모, 해양식물 등 자연의 무한한 가능성을 디자인에 접목해 새로운 상품을 제안해야죠”라며 해결책을 내놓았다.
또한 “패션이 주목받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스토리텔링 융합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을 모티프로 만든 「마르지엘라」의 신발을 보세요. 스토리텔링은 디자인과 쉽게 어우러져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한 번 더 기억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의 디자인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나요?”라고 그녀는 반문한다.
스페인 인디텍스사에서 전개하는 「자라」의 업그레이드 버전 「마시모두띠」의 S/S 품평회장에서도 글로벌 브랜드의 상품기획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여성복 담당자는 “상하이, 홍콩, 빈 등 패션의 주요 도시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으로 풀어냈습니다”라는 설명을 술술 이어갔다. “남성복은 뉴 뮤지엄, 모마 등 뉴욕의 핫한 박물관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으로 연결했어요”라고 설명했다. 25년 넘게 국내 패션 브랜드의 품평회장을 방문했지만 이처럼 디자인과 스토리텔링이 융합된 상품기획 방향을 설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바로 한국 패션의 현주소다.
글로벌 진출? 1조 브랜드로 가기 위한 관문
1조원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시스템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국내 소비자들의 패션 눈높이가 이미 선진국 수준에 올라서 있기 때문에 글로벌서 인정받지 못하면 빅 브랜드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종 브랜드로서 안주하고 한국 시장에만 몰두한다면 지속성장은 불가능하다.
홀세일 형태든 직진출 형태든 해외 시장에 나가 당당하게 인정받아야만 국내 마켓에서 1조원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최근 세계 4대 컬렉션 중 하나인 런던패션위크에 진출해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고 돌아온 한섬의 핸드백 브랜드 「덱케」 관계자는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윤현주 한섬 잡화사업부 상무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최유돈 디자이너의 「유돈초이」와 손잡고 총 33개 디자인의 「덱케」 가방을 런던패션위크에 선보였어요. 현지 패션쇼 반응이 기대 이상이라 깜짝 놀랐어요. 현지에서 촬영한 패션쇼 동영상을 백화점 매장에서 계속 상영하고 있는데 소비자들 역시 「덱케」를 다시 보는 것 같아요”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브랜드 가치가 껑충 올라갔다고 말했다.
「시스템」 「시스템옴므」 「덱케」 등 해외 진출
「덱케」의 런던패션위크 진출 배경에는 한섬이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에 자체 편집숍 ‘톰그레이하운드’를 2014년 오픈하고 「시스템」 「시스템옴므」와 함께 꾸준하게 브랜드를 알려 왔던 것이 주효했다. 「시스템」 「시스템옴므」 역시 파리 갤러리라파예트백화점의 러브콜을 받아 팝업스토어와 정식 매장을 각각 오픈하고 유럽권 소비자들에게 가깝게 다가 갔다.
아웃도어 「블랙야크」는 글로벌 진출에 힘을 싣고 현지에서 인정받으면서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톱브랜드로 등극한 좋은 훌륭한 사례다. 「블랙야크」는 지난 1998년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중 가장 먼저 중국에 진출하고 2010년 대만, 2012년 유럽과 미주 시장 경험을 통해 글로벌 감각을 익혔다.
해외 시장 공략의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를 택했다. 유통망을 확보하기 이전에 지사를 세워 시장을 파악하고 디자인센터를 운영하면서 현지 입맛에 맞는 상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우선했다. 그 결과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가 밀집한 중국 시장에서는 매출 기준 시장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블랙야크」 글로벌서 인정, 아웃도어 ‘톱’
유럽에서는 ISPO, 프리드리히샤펜 등 아웃도어 전시회에서 유통 바이어들과 만나 상품을 먼저 경험케 했다. 이후 직접 오더를 받아 선금을 받은 후 유통망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영업을 이어갔다. 이런 방식으로 작년 말 유럽 내 11개 국에 유통망을 확보했고, 현지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인 「아크테릭스」보다 약 5% 높은 금액으로 판매되고 있다.
특히 6년 연속 독일 뮌헨 스포츠용품박람회인 ISPO에 참가해온 「블랙야크」는 유럽 시장을 겨낭해 내놓은 ‘유럽컬렉션’으로 올 최근 3관왕을 차지했다. ‘ISPO어워드’에서 2개의 황금상(Gold Winner)과 1개의 제품상(Winner)을 수상하며 기능성과 세련된 디자인, 기술력을 인정 받은 것.
「블랙야크」는 중국에서만 연 500억원대 매출을 꾸준히 올리고 있으며, 작년 말 추가한 유럽, 북미 내 유통망 등을 통해 올해는 해외 매출로 8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내년은 1000억원을 목표로 한다.
‘디자인과 퀄리티에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에게 인정받는다면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은 대전제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국 소비자들이 인정한 디자인력과 가성비 뛰어난 상품을 만들어 국내외 시장에서 모두 인정받는다면? 난공불락처럼 여겨진 1조원 토종 브랜드의 탄생도 그리 요원해 보이지 않는다.
**패션비즈 2017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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