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양산 부추기는 패션 오너들

    es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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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6.02조회수 6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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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A사에 다른 대기업 C에서 근무하던 디자인 디렉터 S가 입사했다. S는 하루 출근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녀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문이 난무했다. 전 회사 C사에서 소송을 걸었을 것이다, 입사는 했지만 뭔가 결격 사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른 회사에서 거액을 제시해 데려갔을 것이다, 그녀의 특별한 근무 조건에 합일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등등.

    며칠 뒤, A사의 경쟁사인 B사에 그녀가 임원으로 당당하게 출근했다. 알고본즉슨, 그녀를 경쟁사 A에 빼앗겼다는 사실에 대해 대로한 B사의 오너가 “다른 회사도 아니고 A사에 인재를 빼앗기다니 있을 수 없는 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S를 당장 데려오라”는 엄명을 내린 것. B사 임원들은 갑자기 며칠 만에 ‘S일병 데려오기’ 작전에 돌입했다.

    임원 몇 명이 특사(?)로 그녀를 만나 읍소했다고 한다. “제발 우리 회사로 와 주시라”고…. 모든 조건을 수락하겠노라고…. 결국 그녀는 이미 출근한 A사와의 약속을 하루 만에 저버리고 B사로 옮겼다. 일설에 의하면 화려한 계약 조건이 배후에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녀는 현재 B사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경쟁 대기업 출근한 디렉터 빼앗아 오는 무리수도
    한국 패션을 리드하는 중견 전문업체 E사. 이 회사의 신규 스포츠 브랜드를 주도하는 본부장은 열정적으로 브랜드를 전개해 성공적인 성과를 나타냈다. 동종 스포츠업계에서 이 본부장은 스카우트 대상 1순위로 등극했다. 브랜드 3년 차, 이 브랜드가 한 단계 점프하기 위해서는 정말 중요한 순간, 이 본부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갑자기 퇴사했다.

    고향에 내려가 휴식한다는 이 본부장. 중견업체 사장은 아쉬움을 표하며 휴직을 제안하고 건강이 좋아지면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고향에 내려가 건강을 돌보겠다던 그. 1달 반 만에 대기업 D사의 신규 스포츠 사업 임원으로 한 계단 승진해 출근했다.

    그 배후를 알아보니 대기업 D사의 오너가 이 본부장을 모셔 가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이 회사의 회장은 임원을 시켜 자사 직원도 아닌 지방에서 치러진 타사의 본부장 부친상에 찾아가 설득하게 하는 성의를 보였으며 이에 대해 그 본부장은 마음이 움직였다는 전언이다.

    한 팀을 한 방에 모셔 오기도, 전 회사는 전전긍긍
    대기업 E사의 여성복 브랜드 디자인 실장 K씨, 시장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그녀는 회사에서 조금씩 밀리는 분위기를 절감하며 몰래 자신의 자리를 물색했다. 마침 중소 여성복 전문업체 F사의 회장으로부터 자사의 가장 중요한 간판 브랜드를 맡아 달라는 오퍼가 들어왔다. 그녀는 디자인팀을 통째로 데리고 F사로 엑소더스했다.

    그녀와 그녀의 팀이 F사로 대이동하면서 그 회사에 재직하던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새 팀을 위해 자리를 비워 줘야 했다. 문제는 다음이다. 새 디렉터와 새 팀은 바로 성과를 냈을까? 천만의 말씀. 전 직장 대기업과는 시스템도 지원도 전혀 달랐다. 적응하는 데만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새 팀으로부터 바로 성과가 나오지 않자 이 회사의 회장은 눈에 띄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다음엔 어찌 됐을까. 여전히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한 대기업 E사가 다시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녀는 E사에서 F사로 데려온 디자인팀을 디자이너 한 명만을 남긴 채 또다시 모조리 데리고 E사로 리엑소더스했다. 갑자기 다음 시즌의 상품기획에 문제가 생긴 F사는 현재 급한 대로 디자인을 아웃소싱으로 해결(?)하고 있다.

    데려오고 또 데려가고… 한국 패션, 코미디 수준?
    자, 이쯤 되면 코미디 아닌가. 왔다가 가고 갔다가 또 오고…. 이 업계를 좌지우지하는 리딩 기업 오너들의 수준도 그렇고 줏대 없이 철새처럼 왔다 갔다 하는 업계 최고라 하는 전문가들의 수준도 마찬가지다. 인재에 욕심을 내는 것은 어느 기업이든 당연하다. 그리고 최고의 인재를 스카우트하고 싶은 욕망 역시 당연하다. 하지만 그 욕망에는 어느 정도의 기준과 룰이 필요하다. 내 기업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에 대한 책임감도 필요하다.

    스카우트를 하려면 우선 해당 전직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예의는 필수다. 패션이라는 것이 자칫 한 시즌을 놓치면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기획과 판매의 시점을 고려해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한 후에 이직할 수 있도록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움직이는 사람 역시 이를 고려해 후임에 대한 배려도 해 줘야 한다.

    때문에 한 팀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것은 심하게 말하자면 거의 전 회사에 대한 범죄 행위에 가깝다. 또한 한 팀이 한꺼번에 올 수 있다면 그 팀 역시 똑같이 사라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데려왔으면 그 사람이, 그 팀이 잘 적응하고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장해 줘야 한다.

    30대 디자이너 참석한 품평회장 옷 던지고 막말
    사람을 데려오는 수준뿐만이 아니다. 대기업 G사 품평회장을 들여다보자. 품평회에 참석한 이 회사 회장의 언성이 점점 높아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옷을 내던지고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회장과 한두 명의 남성 임원을 제외하고 품평회장에 참석한 사람은 대부분이 30~40대의 여성 디자이너. ㅆ(쌍시옷)이 난무하는 육두문자 속에서 과연 이 디자이너들,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까.

    이 회장의 막말은 업계에서 유명하다.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상사와 직원 간이지만 이젠 바닥을 너무 많이 보여 줘서 염치라곤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말 표현의 수준이 너무 심해요. 옷을 내던지는 건 다반사고, 옷을 사창가에 비유하기도 해요. 잘 팔리는 옷은 텐프로니 어쩌니, 안 팔리는 건 대포집이니 뭐니… 정말 다양한 버전의 표현들 너무 민망해요….” 현재는 퇴사한 이 회사 전직 직원의 말이다. 이 회사 임원들은 그 유명한 몽고간장 파동 때도 대한항공 조현아 사건 때도 혹여 불똥이 튈까 아슬아슬해하며 숨을 죽여야 했다.

    한국 패션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춰야 한다고 우리는 매일 부르짖는다. 시스템이 잘못돼 있다고. 낙후돼 있다고… 이 시스템을 움직이는 리더들, 과연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고 있는 걸까. 시스템에 앞서 자신의 수준부터 살펴볼 일이다.


    **패션비즈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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