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로 사라진 별들 지금은?

    es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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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04.16조회수 34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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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인터내셔날과 허병구 회장은 우리 패션사에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자 인물이다. 일찍이 수입비즈니스를 국내에 도입했고 「폴로」 「베네통」과 같은 쟁쟁한 브랜드들을 소개했으며 각종 앞서가는 사업들을 벌인 기업. 논노가 내셔널 브랜드로 국내 역사상 가장 남을 기업이라면 한쪽에는 신한인터내셔날이 수입비즈니스의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희대의 사기사건으로 기록된 신한인터내셔날 부도로 허병구 전 신한 회장은 부도가 나기 전 일본 대만을 거쳐 지금은 뉴욕에서 에이전트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허회장은 원래 수출 에이전트 출신으로 가죽과 남성 셔츠를 크게 하다가 수입 사업에 뛰어든 케이스. 수출하면서 출장 갈 때마다 3년 동안 폴로에 찾아가 사정해서 라이선스를 받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그만큼 보는 눈이 좋고 매우 앞서가는 사람이다. 「폴로」 「베네통」 「다니엘에스떼」 「쉐비뇽」 등 당대의 유명한 브랜드들의 라이선스와 수입비즈니스의 포문을 연 주인공이기도 하다.

    천재 허병구 미국에서 에이전트 사업

    「피오루치」를 도입해 서울 청담동 매장에 카페도 만들었고 부도나기 직전 「엠포리오아르마니」를 전개하기도 했다. 아들의 이름 ‘찰스’를 브랜드 네임으로 한 「찰스허」를 런칭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련의 일들을 떠올려보면 당시 너무 앞서갔던 탁월한 인물로 기억된다.

    미국에 가서는 디자이너 브랜드 「신시아스테페」 「신시아로리」에 가죽 제조를 해줬고 「Daryl K」 전체 라인 제조도 진행했으며 「DKNY JEANS」를 런칭할 때 데님과 우븐을 제조 해주는 에이전트 겸 프로모션 업체를 운영했다. 자금 부족으로 시달리기도 했으나 신기한 것은 허회장이 무슨 일을 다시 시작한다면 늘 과거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일을 돕는다.
    그만큼 허회장의 영향력과 파워는 컸다. 미국에선 바이어와 프러덕션 매니저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유창한 영어로 설명하고 사업을 전개했다. 아들은 브라운 대학을 나온 수재인데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홍콩계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0년대 국내 패션시장을 주름잡았던 논노를 이끈 유승렬 회장(56)은 미국 중국 도피생활을 마치고 작년에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사상 소멸시효가 지나 돌아온 그는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상황은 없다.
    대학 재학 때부터 부친이 운영하는 니트 수출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유회장은 80년대 초반 우븐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패션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논노」는 여성 정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급성장하며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구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82년에는 200억원 규모로 회사 볼륨이 급성장하면서 논노는 패션시장에서 성장가도를 달린다. 보유 브랜드도 「논노」를 모체로 「샤트렌」 「후즈」 「나인투나인」 「IF」 등 여성복 브랜드와 계열사인 논노상사에서 「마르시아노」 「니꼬보꼬」 「챨스타운」 등 남성복과 캐주얼 스포츠 브랜드들을 거느렸다.



    유승렬 前 논노 회장, 작년 귀국

    89년 당시 외형으로 1800억원 규모로까지 회사 볼륨은 커졌으나 빨간불이 켜졌다. 설악호텔 인수 등 호텔 관광사업에 무리하게 투자한 것이 화근이 됐고, 또한 신규 브랜드들의 판매 부진이 누적되는 등 악재가 잇따르면서 부도가 발생한 것. 곧바로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나 끝내 91년 파산처리돼 국내 패션시장의 뒷무대로 쓸쓸히 사라졌다. 논노상사의 대표이사였고 회사 부도 후 논노의 법정관리 대리인으로 활동했던 김진수 사장은 현재 원단사업을 하고 있다.

    80년대 논노와 쌍벽을 이루며 국내 패션시장을 리딩했던 나산. 이 업체를 이끈 안병균 회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패션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다는 소문과 이제는 패션사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련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표면상으로는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업을 준비한다는 얘기가 들려오는 가운데 그의 움직임이 더욱 관심을 끈다.



    나산 안병균 회장, 신사업 준비

    80년대 ‘물랑루즈’와 ‘초원의집’으로 요식사업을 시작한 안회장은 우연히 패션사업과 접촉하게 됐고 84년 나산을 설립, 「조이너스」를 시작으로 「꼼빠니아」 「메이폴」 「예츠」 「트루젠」을 잇따라 런칭한다. 브랜드는 물론 여성 소비자들을 잡기 위한 기발한 프로모션과 다양한 마케팅으로 업계 이슈를 몰고 왔던 나산은 패션전문 기업으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안회장은 패션사업이 무르익자 건설업에 눈을 돌렸고 98년 1조원(자산을 물론 지불·보증채무 포함)에 이르는 부도로 나산은 패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나산! 여기에는 안회장의 열정과 그만이 생각하는 패션 철학이 담겨 있다. 전남 함평군 나산면에서 자란 그는 지역명인 ‘나산’을 그대로 빌려 기업명에 사용했을 정도로 패션사업에 열정을 담았다.

    안회장을 아는 지인들은 그에 대해 “패션에 대한 열정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패션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을 세워 80년대를 풍미한 거물로 기억된다”며 “건설업에만 뛰어들지 않았어도 현재 국내 최고의 패션기업이 되지 않았을까”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백화점 효시라 불리는 80년대 불을 지폈던 뉴코아. 여기의 핵심 브레인으로 눈부신 활약을 보였던 김의철 회장은 최근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업 아이템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건설과 밀접한 비즈니스로 업계에 다시 한번 주목을 끈다. 김회장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의 샤프한 머리와 시장을 보는 안목은 현재까지 국내 유통의 전설(?)로 남는다.

    유통 대부 김의철 회장, 건설사업을

    김회장은 고려대 역도부 출신으로 유통업에 입문했다. 과거 한신보일러에서 시작한 김회장은 건설업체인 한신공영으로 옮기며 그의 능력을 발휘한다. 한신공영을 이끌고 있는 김형종 회장의 눈에 들었던 김의철 사장은 김형종 회장의 첫째 딸과 결혼해 안정적인 사업을 펼치게 됐다. 이후 김형종 회장의 타계와 동시에 뉴코아 슈퍼로 시작해 85년에는 뉴코아 신관을 지으며 영역을 넓혀갔다. 뉴코아는 연평군 36% 신장이라는 유통의 신기록을 수립하며 다점포 전략을 추진, 27개까지 점포망을 늘렸다.

    킴스클럽의 네이밍 유래도 흥미가 있다. 김의철 회장은 본인의 성 ‘김’을 빌어 Kim’s Club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 80년대 호황을 누린 뉴코아백화점은 ‘중저가 백화점’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성공적으로 안착하는가 싶었지만 2000년이 가까워지면서 할인점과 맞물리며 가격경쟁력에 밀리고 만다. 급기야 IMF라는 불운까지 겹쳐 98년 부도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아직까지 ‘뉴코아’는 국내 유통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유통 대부라는 네임에서 물러난 김회장이 다시 건설 비즈니스에 뛰어들면서 과연 어떠한 그림을 그릴지 궁금해진다.



    박명수 사장,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활동

    셔츠시장 마켓셰어 2위를 자랑했던 동양어패럴을 이끈 박명수 사장은 가업을 이어받아 「찰스주르당」을 토털 남성복 브랜드로 런칭하는 등 활발한 사업을 펼친 경영인이었다. 특히 프랑스 디자이너 마틴싯봉을 점 찍어 이 디자이너 브랜드를 인수해 생제르망 쪽에 매장을 오픈하고 마레에 사무실도 오픈해 글로벌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IMF로 활발하게 추진하던 사업 확장이 오히려 화근이 돼 부도 후 프랑스로 건너가서 현재까지 거주 중이다.

    이후 보성그룹을 마틴싯봉의 투자자로 유치해 인수하면서 박사장은 파리지사장 격으로 파리 행정을 관장하며 월급 사장으로 변신했다. 다시 보성 부도 이후에는 쌈지가 프랑스 법인으로 등록해 이후 세컨드 브랜드를 런칭했다. 쌈지가 다시 「마틴싯봉」 사업을 축소하자 현재 신발 가방 브랜드인 「노벰버(November)」로 신발 라인을 런칭하고 화장품 브랜드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90년대 초·중반에 이름을 날린 장익용 서광 회장은 대외활동 없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조용히 노후를 보내고 있다. 지금은 여성복 「까뜨리네트」와 아울렛사업만을 전개하는 서광의 주주로 남아 있을 뿐 업무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서광이 화의신청에 들어가기 직전 대표이사로 활동한 장회장의 장남 장철호 사장은 지금은 토털 멀티브랜드 전문업체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1년을 입어도 10년 된 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이란 카피문구로 정통 신사복 문화를 이끈 문병국(39년생) 전 트래드클럽 사장은 지난해 3월까지 한창 계열사인 트래드클럽&21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문사장은 90년대 중반까지 트래드클럽을 이끌며 남성복 시장의 대부로 존경받았다.



    문병국 사장, 고문 활동 접고 조용히

    전문 경영인 자리에서 물러난 뒤 그는 클리포드의 경영자문을 거쳐 최근 1년 반 정도 「트래드클럽」 고문으로 다시 활동했다. 「트래드클럽」이 유앤드림(대표 박성준)으로 매각된 지금은 한창 감사 직함만 갖고 있어 2주에 한 번 꼴로 회사를 방문하는 정도이며 대부분의 시간은 건강관리에 쏟고 있다.

    캐주얼 「루츠」를 전개한 김남웅 전 사보이유통 사장은 최근까지 중국에서 「루츠」를 생산해 국내에 판매했으나 SK가 정식 계약을 따내는 바람에 생산을 중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김사장은 10년이 넘게 「루츠」를 전개해오며 캐주얼 마켓의 핵심 브랜드로 키워왔으나 자금난으로 포기, 지금까지도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김사장은 사보이호텔 오너의 장남으로 캐나다 수입 브랜드 「루츠」와 이탈리아 캐주얼 브랜드 「피오루치」를 런칭해 전개했다. 지나친 확장으로 부도를 낸 뒤 현재는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남웅 사보이 사장 캐나다 오가며

    정환상 클라라 회장은 부도 이후 칩거 중이다. 70대의 나이로 부도 전까지는 「클라라」 브랜드 사업은 물론 각종 협회 활동 등 패션계 원로로서 활동했으나 클라라 부도 이후 조용히 지내고 있다. 정회장의 아들인 정승기 이사는 현재 성주인터내셔날 영업이사로 재직 중이다.

    클라라는 중년 여성들을 타깃으로 20여 년간 여성정장 부티크 「클라라윤」을 전개해온 업체로 68년에 설립됐다. 그동안 다수의 수상 경력을 기록하며 꾸준히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아왔다. 99년의 유명한 ‘옷로비사건’ 중심에 있던 「라스포사」 정일순 씨가 부인이다.

    「미치코런던」 여성복을 전개하던 김정곤 카인드웨어서울 사장은 일본 수입 슈크림베이커리인 비어드파파를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다. 활발한 활동을 하며 한때 여성복 업계의 메이저로 급부상했던 김 사장은 부도 이후 일본 수입 브랜드인 「퍼슨스」로 여성복과 라이선스 사업을 하며 재기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이 사업도 정리하고 이후 베이커리로 전환했다.



    김정곤 카인드웨어 사장 베이커리 사업

    김호준과 보성. 이 이름을 떠올리면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유사 이래 패션계에서 가장 떠들썩한 ‘뉴스메이커’였던 보성. 감각적인 1세대 오너들에 비해 패션을 풀어내는 방식을 다르게 추구했던 보성은 언제나 센세이셔널했다. 말미를 불행하게 장식해서 우리의 기억 속에 불편하게 남아있긴 하지만 사실 보성은 시대를 앞서간 일을 많이 했다.

    「닉스」 「보이런던」 「야」 「롤롤」 「얌야밍」 「니켄리쯔」 「클럽모나코」 「스톰」 「마틴싯봉」 등 수많은 브랜드를 런칭했고 각계 전문가들과의 코워크로 다양한 영역의 회사를 설립했다.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르긴 했지만 벤처비즈니스의 전형을 보여준 기업이기도 했다. ‘한다’ 하면 확실하게 배팅하는 배포와 선이 굵은 비즈니스를 보여줬다.

    캐주얼 브랜드 외에도 하라패션 인수로 「파세르」 「F·컬렉션」, 앤스튜디오의 「갤러리퍼퓸」, 김명림 사장과의 벤처기업 림코퍼레이션 「레지데67」 등에 이르기까지 여성복 부문에도 공격적 확장으로 큰 영향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햄버거유니버시티’로 유통사업에 포문을 연 데 이어 ‘유스데스크’로 다점포 유통을 전개하기도 했다.



    뉴스메이커 김호준, 발모제 사업?

    한국의 바나나리퍼블릭을 꿈꾸는 새로운 SPA형 브랜드 「쏘베이직(So Basic)」, 세우폴리머 인수 이후 태승인터내셔날 하라패션에 대한 전격적인 위탁경영, 벤처비즈니스의 야심찬 계획과 공격적인 인재 스카우트 등 보성을 둘러싼 이야기 거리는 당시 패션 유통업계를 온통 뒤흔들었다. 이들의 투자가치에 대해 대기업도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과연 이들의 야망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으나 결국 나라종금 인수 이후 이 회사는 퇴락의 길을 걷게 된다.

    김 회장은 부도 후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귀국해 ‘죄값을 치르고 다시 재기하겠다’는 생각으로 2년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재기를 시도했다. 이 와중에 김성민 현 세정과미래 사장을 통해 「콕스」를 런칭, 다시 영화로운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다. 이어 2~3개의 신규 브랜드도 준비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닉스와 새로운 회사를 정리하면서 실패했다. 현재 패션과는 무관한 발모제 사업을 하고 있으며 패션에 대한 꿈을 잠시 미루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일어설 것으로 관계자들은 생각한다.

    지난 82년부터 섬유 패션업계에서 활동해온 박풍언 회장(65)은 현재 한국의류산업협회(의산협)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7월 숙환으로 타계한 고 최형로 회장의 후임으로 2006년 의산협 회장에 취임했으며, 오는 2008년 2월 임기가 만료된다.



    이원평 회장, 중국문화 연구 생활도

    박회장은 회갑이 지난 연륜임에도 협회 회장직에만 그치지 않고 패션 관련 학계와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공지능패션 부문의 정부 연구과제 프로젝트인 ‘스마트의류’에 산학관을 연계하는 등 프로젝트 관련 컨소시엄을 구성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원평 전 데코 회장은 지난해 말로 데코를 잠시 떠나 중국에 머무르며 그동안 못다한 ‘중국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본인이 극구 고사했지만 현재까지도 데코 회장직과 그에 상응하는 예우는 유지되고 있다. 이회장은 데코를 이랜드에 넘긴 뒤에도 계속 데코 회장으로 출근하며 신규 사업과 중국 관련 사업 등에 관여했으나 올 초부터 부인과 함께 중국에 머물고 있다. 이회장은 현재 중국어와 중국문화 등을 공부하는 등 그동안 못다한 새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베이징칭화대 국제경영대학원에서 만학의 길을 걷고 있는 이회장은 “인생디자인을 다시 하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아직도 열정적으로 학구열에 불타고 있는 소식을 전한다. 최근에는 일본 미쓰코시백화점 바이어와 함께 국내에 잠시 들어와 톰보이 김명희 회장 등을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특히 톰보이 고 최형로 회장과는 가장 가까웠던 관계여서 톰보이 관련 일이라면 언제나 발벗고 나서고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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